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슐레지엔 주 (문단 편집) === 바이마르 공화국과 나치즘 === [[파일:Flag_of_Ober_Schlesien.svg.png]] 상부 슐레지엔 주의 깃발. 한편 하부 슐레지엔 주는 분리되기 전 상징을 그대로 사용했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Teilung_Oberschlesiens.png]] 상부 슐레지엔의 분할. 노란색은 독일, 짙은 청색은 폴란드, 하늘색은 체코슬로바키아. 1919년 바이마르 공화국은 슐레지엔 주의 오펠른 관구로 "상부 슐레지엔"(Provinz Oberschlesien. 주도-[[오폴레|오펠른]])" 주로 신설, 나머지 지역으로 "하부 슐레지엔(Provinz Niederschlesien. 주도-브레슬라우)" 주를 신설하여 슐레지엔 주를 2개로 나누었다. 이 두 주는 1938~1941년 한때 다시 합쳐졌다. 하지만 1차 대전이 독일의 패배로 끝나면서 슐레지엔에도 암운이 드리우기 시작했다. 1919년에 훌트신 지역이 [[체코슬로바키아]]로 편입되었고, 상부 슐레지엔 전역에서 폴란드 정부의 사주를 받은 폴란드계 주민들이 무장봉기를 일으키고 이에 반대하는 독일의 준군사조직들과 곳곳에서 충돌을 일으키면서 그야말로 개판 오분 전의 상황으로 치닫고 만다. 결국 1921년 주민 투표를 거쳐 상부 슐레지엔이 독일과 신생 폴란드로 분할되었다.[* 폴란드로 넘어간 땅의 면적은 비록 작지만, 카토비체 같은 알짜 산업지대가 넘어가버렸다.] 폴란드로 넘어간 지역은 [[https://en.wikipedia.org/wiki/Silesian_Voivodeship_(1920%E2%80%9339)|실롱스크 주]]가 되었으며, 자치의회를 갖는 등 당시 폴란드 유일의 자치주였다. 1939년 [[폴란드 침공]] 직후 히틀러는 다시 상부 슐레지엔을 합병하여 독일령으로 삼았다. 그렇지만 전쟁은 독일의 패배로 끝났고 연합국 사이의 합의에 따라 전후 독일과 폴란드 사이의 국경이 [[오데르-나이세 선|오데르 강과 나이세 강]]으로 정해짐에 따라 이 국경선 외부에 위치했던 슐레지엔은 고스란히 폴란드와 체코슬로바키아에 넘어갔다. 당초 미국과 영국은 오데르-나이세 선이긴 한데 동쪽에 있는 글라처나이세 강(Glatzer Neiße. 폴란드어로는 니사 크워즈카 강(Nysa Kłodzka))을 새 국경으로 만들려고 했는데 이 시나리오에 따르면 주도 브레슬라우를 비롯한 슐레지엔의 절반은 독일이 건질 수 있었다. 하지만 이는 소련의 반대로 실패했다. 비록 20세기 초의 전성기 수준까지는 아니었지만 상부 슐레지엔은 2차 대전 당시에도 독일의 주요 공업 지역 중 하나였고, [[비스와-오데르 대공세]] 당시 독일군은 미친 듯한 페이스로 밀려오는 소련군을 피해 황급하게 후퇴하느라 슐레지엔의 공업 지대를 손 하나 까닥 못해보고 온전한 상태로 남겨놨고, 6년에 걸친 전쟁으로 인해 국토가 황폐화된 폴란드에 상부 슐레지엔은 귀중한 선물이었다. 또한 [[주데텐란트]]의 경우에서도 보이듯 영토만 할양하면 이 일대에 잔존할 독일계 소수민족들이 다시금 분규를 일으킬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에 슐레지엔에 거주하던 독일인들 역시 대부분 독일 본토로 추방되었고 마찬가지로 소련에 합병된 동부 폴란드에서 추방된 폴란드인들이 이주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